[글1] 사냥꾼을 만나다.
무득 손에 차가운 감촉을 느낀다. 깜빡 졸았었다. 그 사이에 손을 싸샤가 와서 슬쩍 핥았나 보다. 이 녀석은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런 행동을 한다. 싸샤가 그럴 때마다 야단을 치는데, 예기치 않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그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 썩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싸샤를 귀엽지만 그 축축하게 차가운 느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싸샤에게 집게 손가락 하나를 흔들어 보이며 경고를 준다. 귀여운 허스키 싸샤는 귀를 뒤로 바짝 눕히고 혀를 조금 내민 채 갈색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본다. 웃고 있는 것 같다. 귀여운 모습이지만 그럴 때 절대 싸샤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같이 웃어주지도 않으며 싸샤가 내 눈을 피할 때까지 심각하게 노려본다. 내가 자신의 주인임을 기회가 될 때마다 알려주려는 것이다. 허스키들은 무리를 짓는 개인데, 그 무리의 대장 말만 복종한다고 읽었다. 싸샤가 코로 문쪽을 가르킨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신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싸샤가 달려나간다. 나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같이 내닫는다. 한창 때는 100미터를 13초 아래로 뛰었지만 이젠 옛날 이야기다. 싸샤는 계속 앞서서 달린다. 허스키들은 달려줘야 한다. 추운 극지방에서 썰매를 끌던 그 본성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이다. 허스크를 좁은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항상 생각한다. 그럴 경우 스트레스를 받아서 온 집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허스키는 달리기 위해 태어난 개이기 때문이다. 나도 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달린다. 같이 보조를 맞춰 달려주지 않으면 내가 다칠 수도 있다. 이미 다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한눈 파는 사이에 토끼를 보고 갑자기 뛰는 바람에 줄을 잡고 있던 왼쪽 어깨를 다쳐서 1년을 고생한 적이 있다. 허스키는 크기에 비해 힘이 세다.
다행히 오늘은 많이 춥지는 않다. 영하 12도다. 지난 주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갔었기 때문에 영하 12도는 봄날씨와 다름없다. 바람까지 없어서 오랜만에 따뜻한 햇볕이 내려비치니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이곳은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어서 기온도 2-3도 정도 낮고, 눈도 더 많다. 산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조깅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넓은 4-5에이커의 공간을 뛰는 것이라서 그렇다. 북쪽으로 꼭대기에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서있는 완만한 언덕이 있고, 집 옆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연못, 그리고 그 건너에는 갈대들이 무성한 약 9에이커 정도의 땅이 있다.
2012년에 이사온 이 집은 전체 땅 크기가 약 46에이커가 되는데, 55,000평 정도에 해당한다. 이 땅에는 우리가 사는 작은 단층집과 완성하지 못한 워크샵 건물 하나가 있으며, 동쪽으로 뻗어있는 나머지 땅은 숲과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싸샤와 산책을 하는 10여 에이커를 뺀 나머지 땅은 모두 숲입니다. 자작나무, 소나무, 전나무 그리고 이름모르는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고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집 뒷마당에 하나, 연못 건너편에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있다.
싸샤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나도 팔 다리를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쌓인 눈에 다리가 빠져서 더 힘이 든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른다. 슬슬 팔도 아파오고 다리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헉헉대며 내뿜는 숨에 앞이 잘 안보인다. "싸샤, 천천히!" 이렇게 외쳐보지만, 내가 줄을 아랑곳없이 내달린다. 줄을 잡아채서 겨우 싸샤를 세우자 싸샤는 갈대밭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저기 냄새 를 맡으며 다니다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숲속을 쳐다보더니 계속 주시하며 서있다. 어디서 다른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숲에서 못보던 개 두 마리가 뛰어나온다. 다리가 길지 않고 체구가 작은 개들이다. 사냥개였다. 남의 땅에 허락도 없이 사냥개를 풀어놓다니. 나는 신경이 곤두선다. 자연이 잘 보존된 이 숲에는 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가끔 돈을 낼테니까 사냥을 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직접 본 동물만 해도 사슴, 여우, 비버, 수달, 칠면조, 너구리, 토끼, 거북이, 자라 등이 있다. 흑곰 (Black bear)도 봤다고 앞집의 노먼이 이야기했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동물들을 재미로 죽이는 일을 용납할 수는 없다. 그래서 펜스에도 'No Hunting' 표지판을 붙여 놓았다
싸샤가 사냥개들을 보고 전력으로 내달린다. 달리는 허스키는 언제 봐도 멋있다. 빠르고 힘이 넘친다. 싸샤는 암놈이어서 큰 체구는 아니지만 근육들이 잘 발달해서 자기보다 큰 개와 몸싸움을 해도 밀리지 않는다. 개 공원에 갔을 때도 자기보다 덩치가 큰 개들과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 사냥개들은 싸샤가 전력을 뛰어오는 것을 보더니 잠시 째려보다가 서쪽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그 개들은 목줄에 안테나가 달려 있다. 멀리서도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 장치다. 그렇다면 사냥꾼들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픽업 트럭 3대가 줄을 지어 남쪽에서 달려오더니 길가에 나란히 차를 댄다. 그 중에 1대가 길을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뭔가를 찾고 있는 눈치다. 사냥개들은 그 트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냥꾼 무리들이다. 며칠 전에도 저 트럭들은 건너집에 서있는 것을 봤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서 그들이 무전기로 통신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갑자기 평화롭고 조용했던 우리의 보금자리가 시끄러워졌다. 사유지에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개들을 풀어놓고 사냥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사냥개를 쫓아가는 싸샤를 세워놓고,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그 때, 트럭 1대가 사냥개와 우리를 발견하고 방향을 바꾸더니 우리집 드라이브웨이로 진입한다. 긴 드라이브웨이를 따라 검은색 포드 픽업트럭이 들어온다. 긴장된다. 싸샤는 앉아서 트럭을 주시하고 있다. 운전석에서 트럭 창문을 통해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트럭 문이 열리고 사냥용 위장복을 입은 건장한 백인 남자가 트럭에서 내린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약 30대 정도되는 젊은 친구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다. 나를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 받았다. "How are you doing?" "I am good. Thanks. And you?" "Not too bad." 나는 계속 셀폰을 손에 쥐고 있다. 싸샤가 달려들지 않도록 줄을 힘을 줘서 잡고있다. 허스키들은 사람과 친해서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늑대를 닮은 모습에 사람들은 허스키에 가까이 오는 것을 무서워한다.
"Are you hunting in this area?" 내가 물었다. "Ya, we are hunting coyotes now." 지금 코요테를 사냥 중이라고 한다. 이야기인 즉슨, 닭과 소를 키우는 이웃집에 코요테들이 자꾸 공격을 해서 피해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코요테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지역을 돌고 있다고 한다. 자기 개들이 길을 잃어서 네 땅으로 들어왔는데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를 한다. 백인 특유의 순진한 미소를 띠고 제스쳐를 써가면서 설명을 열심히 한다. 나도 며칠 사이에 코요테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Thank you. Have a good day."하고 인사를 한 후, 트럭에 타서 후진으로 나의 땅을 떠났다. 그 순간, 길에 일렬로 서있던 트럭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적한 시골길이 바빠졌다. 그들은 북쪽으로 이동해 갔다. 싸샤를 데리고 집으로 걸어들어오는데,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개 짖는 소리보다 조금 날카로운 톤으로 경망스럽게 짖는 소리가 난다. 코요테 소리다. 잠시 후 총소리가 납니다. 한 발, 두 발, 세 발, 계속해서 난다. 그러다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사냥이 끝난 것이다. 싸샤는 총소리 난 방향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집을 향해서 빨리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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